백남기 농민 1주기 추념전 밀물

기획: 홍진훤, 김현주
작가: 노순택, 서평주, 윤성희, 이동문, 이윤엽, 치명타, 홍진훤
일시: 9월 20-25일
장소: 관훈갤러리 1,2층
주최: 백남기 투쟁본부

기획의도
<밀물>은 故 백남기 농민 타계 1주년을 기리기 위해 백남기 투쟁본부 주최로 마련된다. 사회적 문제에 깊이 천착하는 7인의 작가가 참여하여 추념의 자리를 갖는다. 무거운 주제에 기민하게 반응한 이들은 정치적, 사회적 발언을 어떻게 예술 문법으로 시각화할 수 있는가에 천착한다. 전남 보성에서 우리밀 농사를 지은 백남기 농민 그의 삶에서부터 이 땅의 농민의 오늘, 사건의 당일부터 그 이후, 폭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 하나의 사건이 이슈로 어떻게 파급되는가의 문제, 남겨진 부재라는 모순을 예술은 어떻게 풀 수 있는가의 고민 등 추모의 뜻이 기폭되어 예술가의 여러 입장으로 드러난다.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인전 ‘비상국가 II- 제4의 벽’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 노순택은 국가에서 일상과 비상사태의 구분은 유효한지, 갈등과 폭력은 어떻게 시각화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사회 체제의 이면을 시각화하는 서평주는 선거라는 대의민주주의의 허상을 짚으면서 주체의 과업을 의제로 발굴한다. 기자와 사진가의 업을 병행하는 윤성희는 백남기 농민 사건의 충실한 기록자로 집회 시위의 외양적 충돌보다 놓치기 쉬운 정황과 맥락을 추적한다. 이동문은 4대강 사업이 진행되던 낙동강 줄기에서 이 땅을 일구는 농민들의 삶을 포트레이트 형식으로 제시하고 기록한다. 사회적 현안에 대한 쟁점을 목판화로 고발해 온 이윤엽은 백남기 농민을 담은 판화와 억압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시각화한다. 치명타는 SNS의 타임라인에 등장하는 이슈를 선별하고 관련 기사를 리서치하여 드로잉으로 변안한다. 최근 부재의 기록은 어떻게 가능한가 고민하는 홍진훤은 그곳에 존재해야 할 이의 부재를 쫓는다. 7인의 작가의 작품과 더불어 활발하게 디자인의 사회적 가치를 묻는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 실천이 협업하여 전시의 의미를 널리 알리고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할 예정이다.

디자인. 일상의실천

노순택
길바닥에서 사진을 배웠다. 배우긴 했는데, 허투루 배운 탓에 아는 게 없다. 공부를 해야겠다 마음먹지만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몰라 헤맨다. 학동시절부터 북한괴뢰집단에 대한 얘기를 지긋지긋하게 들어온 터라 그들이 대체 누구인지 호기심을 품어왔다. 나이를 먹고 보니, 틈만 나면 북한괴뢰집단을 잡아먹으려드는 우리는 대체 누구인지 호기심을 하나 더 품게 됐다. 분단체제가 파생시킨 작동과 오작동의 풍경을 수집하고 있다. 사진기로도 줍고 손으로도 주워왔는데, 내가 주워 온 것이 무엇인지 몰라 한참을 생각한다.

가뭄
이것은 눈발이다. 마치 그렇게 보인다. 아니 폭포다. 어두운 밤, 깊은 산골 저 높은 벼랑에서 가늘고 세차게 떨어지는 한 줄기 폭포. 마치 그렇게 보인다. 눈물이었을까.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측은하게 흘렸으나, 그로써 할 도리를 다 했으니 더 이상 도전한다면 누구든 용서치 않겠노라는 유신공주의 가짜눈물. 마치 그렇게 보인다. 차가운 진도 앞 바다에 영문도 모른 채 가라앉은 이들이 있었다. 304명이었다. 구할 수 있었는데도, 구하지 않았다. 어린 학생들만 250명이 넘었다. “유가족의 가슴에 맺힌 한이 풀릴 때까지” 구조와 인양과 진실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던 대통령 박근혜의 약속은 거짓이었다. “언제든 찾아오라”던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길에서 유가족이 마주친 건 경찰과 차벽, 방패와 몽둥이었다. 경찰을 밀자 물대포가 난사됐다. 조준사격이었다. 맹독성 캡사이신을 기준도 없이 퍼부었으니 그것은 화학무기였다. 2015년 5월 1일의 봄 밤, 그 하루에 4만 리터의 물이 발사됐다. 누군가 맞아 죽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밤은, 같은 해 11월 14일에 재현돼 농민 백남기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사람들이 물에 가라앉았다. 가족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국가는 물을 퍼부었다. 이것은 홍수인가. 아니 가뭄이었다. 수십 년 만의 지독한 가뭄을 해결하겠다고 대통령이 마른 논에 물을 발사하는 쇼가 뉴스를 장식했다. 그러나 더한 가뭄은 정치의 가뭄, 시민의 생명권에 한 줌의 가치도 두지 않는 권력자의 메마른 비정상 혼이었다.

노순택, 가뭄 #CFF0109, 잉크젯 안료프린트, 155x110cm 2015

노순택, 가뭄 #CFF0109, 잉크젯 안료프린트, 155x110cm, 2015

서평주
부산대 서양화, 부산대 대학원 졸업. 부산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간 힘을 운영중이며 사회 문제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다.

촛불 이후 급격하게 식어버린 운동에 대한 작업이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이 선거라는 빅이벤트로 사라져버리고 또 다시 87년의 모습을 반복하려는 (이미 반복하고 있는) 현재의 한국에 대한 내용이다.

서평주, After play is over (연극이 끝나고 난 뒤), Video, 5min 27sec, 2017

윤성희
글 쓰다 사진 찍는 사람. 노동,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다. 자본이나 권위 같은 보이지 않는 힘들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 속에서 사라지기 쉬운 순간들을 포착하고자 한다.

물 속의 문장
물 속에 잠긴 1년의 시간으로 이루어진 문장이 있다. ‘한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사망했다.’
적법한 공무집행과 불가피함, 불법 폭력시위와 가담자, 빨간 우의와 부검영장 같은 말들에 휩쓸려 이 문장은 부침을 거듭했다. 폭락한 쌀값과 지켜지지 않은 약속, 존엄 없는 공무와 책임 없는 집행 같은 것들이 떠올라왔다. 가라앉은 사람의 이름을 제 것으로 불러 되살리려는 목소리들이 또한 떠올라왔다. 누군가는 가라앉히려 했고 누군가는 건져올리려 한 이 문장의 시간을 따라갔다.

윤성희, 2차 민중총궐기 , 100x150cm, 2015 = 소리가 일어섰다. 여기,와 사람, 과 살려라, 같은 소리가 깃발처럼.

이동문
1993년 서울시립대학교 환경조각학과 졸업. 대학 졸업후 15년간 광고대행사 근무, 3D 전시 영상 컨텐트 제작 프로듀서. 2004년 부터 사진으로 작업 매체를 바꿔 본격적으로 사회적 성향의 다큐멘터리 사진을 시작했다. (개인전 4회, 단체전 국내외 30여회 등 ) 2013년부터 현재 까지, 부산 소재 복합문화예술공간인 <예술지구_p> 공동대표로 있으며, 전시기획 및 프로그램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삼락(三樂)의 깃발
부산 삼락둔치 친환경농지 82만㎡, 191가구의 농민들…
정부의 4대강 토목사업의 일환으로 이곳 삼락둔치는 곧 낙동강에서
채취된 준설토 임시 적치장이 될 계획이다.
대대로 지켜왔던 경작지의 절반을 반환하는 조건으로 2005년 부산시로부터 당대에 한해 이곳 농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겠다던 시장과의 약속이 여전히 지켜지길 믿고 있으나, 평당 12,500원의 보상조건으로 이곳에서 영구히 내몰리게 되었다.
그저 땅만 알고, 땅만 파며 별 욕심없이 살아왔던 그들…
부산시로부터 강제 행정 대집행일을 목전에 두고 더 이상 디뎌볼 수 없을 정든 땅 위에 서서 오늘도 불안한 마음으로 삽자루를 든다…
이제 그들 가슴속엔 “생존”이라는 깃발이 하나씩 서있다.

이동문, 삼락의 깃발-김정곤 55세 3000평, Pigment Print, 100×120㎝, 2010

이윤엽
저는 이윤엽이라고 합니다. 안성에 살고 있습니다. 목판화 작업을 합니다. 하긴 하는데 잘 못합니다. 요즘 더욱 그렇긴 한데 잘해야 하나 의문이 듭니다.

백남기 어르신
질경이는 그림에도 시에도 노래에도 많이 나와서
난 별로드라. 다른 풀도 많은데
그랬는데 몇해 전 봄엔가 질경이를 보구 어라 눈이 확 트였었다.
마당에서 였는데, 질경이가 쏙쏙 솟았네. 문에서 창고로 창고에서 문으로 문에서 밭으로 밭에서 문으로 정확히 내가 지난해 지나간 곳 마다 cctv처럼 켜졌네. 밟으면 씨를 발바닥에 붙여 옮겨다니게 장치된 풀. 밟을 때마다 번지는 풀. 번져서 길이 되는 풀, 밟을수록 진해지는 풀, 따라가면 문이 나오는 풀. 순간 질경이가 질경이로 순전히 보였고 파고 싶다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생각만하고 있다가 백남기 어르신을 새길 때 아 – 맞다 질경이 하고서 어르신과 질경이 풀길을 함께 새기게 되었다.

이윤엽, 백남기 어르신, 목판화, 42×32㎝, 2016

치명타
치명타는 사회라는 구조물 속에 수장된 다양한 의문과 반응들 중에서 단서가 되는 이미지를 채집하여 드로잉과 회화, 영상으로 구현한다. 2013년부터 콜트-콜텍 기타해고노동자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투쟁 일상을 기록한 〈여의도-로잉〉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2016년 공간해방에서 세 번째 개인전 〈뉴스피드〉를 진행했고 2017년 문래창작촌 MEET 창작부문에 선정되어 네 번째 개인전 〈Make up Dash〉를 준비하고 있다.

페이스북에는 뉴스에서 다루지 않는 많은 사건들이 올라온다. 나는 멀리 영동에서 이를 드로잉으로 기록했다. ‘페벗’들의 타임라인에서 그날을 대표하는 이슈를 발견하고 관련 기사를 리서치 한 다음, 개인의 시선이 잘 묻어난 글을 선별했다. 그리고 웹에서 수집한 이미지들 중에서 어울릴만한 것을 골라 글과 한 화면에 재구성했다. 매일 이런 방식으로 타임라인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건들과 사람들의 목소리를 붙잡았다.

치명타, 페이스북 드로잉_ 김경봉님의 글과 고동민님의 사진, 종이 위에 수채 콩테, 42×30cm, 2016

홍진훤
인간이 의도치 않게 만들어버린 빗나간 풍경들을 응시하고 카메라로 수집하는 일을 주로 한다. 〈임시 풍경〉 (2013), 〈붉은, 초록〉 (2014), 〈마지막 밤(들)〉 (2015), 〈쓰기금지모드〉 (2016) 등의 개인전을 열었고 <제주비엔날레(제주도립미술관)> (2017), 〈Peace, Voice, Nice(경남도립미술관)〉 (2015), 〈Minima Moralia(이르쿠츠크 국립 미술관)〉 (2015), 〈대구사진비엔날레(대구문화예술회관)〉 (2016), 〈사회 속 미술―행복의 나라(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2016) 등 여러 단체전에 참여했다. 서울 창신동에서 ‘지금여기’라는 공간을 운영했고 이런 저런 전시와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무엇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에 대한 흔적이 남았다. 존재가 상실된 곳에 시선들만 남았다. 백남기 농민의 집 주변을 떠돌며 부재의 단면들을 기록한다.

홍진훤, 운수 좋은 날, Digital Pigment Print, 110x147cm, 2017

디자인. 일상의실천